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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독립운동가 ‘박준채 시’ 무더기 발굴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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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댓글 0건 조회 79회 작성일 22-07-18 08: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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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학생독립운동에 불씨를 지핀 독립운동가 박준채(朴準採, 1914~2001)가 와세다대학 유학 시절 포함, 식민지기에 집필한 시가 무더기로 발굴됐다.

17일 문병란시인기념사업회(회장 리명한)와 김정훈 전남과학대 교수에 따르면 1929년 나주역 통학 사건의 주인공인 박준채가 1929년부터 1940년까지 10여 년에 걸쳐 창작한 시편 31편이 발굴됐다.

이번 시편은 지난 5월14일 문병란시인기념사업회와 나주학생독립운동기념관 주최의 한일심포지엄 진행 과정 중에 박준채의 시가 건네져 검증, 분석된 가운데 일제강점기 그의 모든 시가 검증되고 공개적으로 처음 확인돼 문학 안팎의 주목을 받고 있다.

박준채의 시 모음 원고를 포함해 유품이 박준채의 차남 박형준에 의해 나주학생독립운동기념관에 기증된 것은 2010년 12월4일(기념관 데이터 근거)로 밝혀졌으며, 나주학생독립운동기념관에 보관된 박준채의 시 모음 원고 사진 파일(한글 시 21편·일본어 시 10편)이 한·일심포지엄을 주관한 김정훈 전남과학대 교수에게 건네진 것은 3월31일로 알려졌다.

김 교수가 ‘친필원고에 대한 검증·분석을 하지 않는다면 역사적인 인물의 실상과 진실이 그대로 묻히고 말 것’이라는 생각으로 박준채가 집필한 것인지, 그 진위를 판단하기 위해 심포지엄 후인 5월20일 재차 나주학생독립운동기념관을 방문했다.

이어 김 교수는 원본 대조 확인 절차를 거친 후, 일본어 시 검증을 위해 10편의 일본어 시 중 ‘환영’이라는 작품을 골라 일본의 시인 사가와 아키씨에게 5월15일(메일) 시를 읽은 감상과 일본어 표현에 대해 조언을 구했다. 그리고 5월16일 “보내준 작품은 시로서 잘 정리된 것이고 새로운 서정성과 리듬이 있으며 일본어 표현도 뛰어나다고 생각한다”라는 답변을 받은 바 있다.
결정적 증거 확보를 위해 김 교수가 나주 박준채의 생가(남파고택)를 찾아 그의 조카 박경중을 6월9일 방문했으며, 거기서 박경중이 소지하고 있던 박준채의 필체(와세대대학 시절 박준채가 보내온 서간)와 시집 모음 원고 노트의 필체가 동일한 것임을 최종적으로 확인했다. 이후 시편에 대한 분석을 시도했다.

노트 사진 파일을 받고 5월20일 직접 나주학생독립운동기념관에서 확인한 박준채의 시편 모음 원고는 박준채가 일본의 마루젠(MARUZEN) 문방구에서 원고 노트를 구입해 기록한 것이다. 시편이 신문이나 잡지 등에 게재된 적은 없으나 박준채가 나주학생독립운동의 해인 1929년부터 10여 년 동안 쓴 시를 노트에 정리한 것으로 보인다.

노트 도입부에는 목차 항목이 있어 그곳에 각 작품명을 자필로 순서대로 나열돼 있다. 그리고 각 시편 뒤에는 집필 시기를 명시했기 때문에 작품이 언제 쓰였는지 파악할 수 있다. 목차에 명기된 작품 수를 헤아리면 우리 글 작품이 26편(목차에 제목명이 있는 우리 글 작품 중 5편 훼손)이고, 일본어 작품이 14(훼손된 4편 포함)편이다. 한글 작품 중에는 시조가 8편에 이른다. 일본어 작품 중에는 하이쿠나 단가도 있어 그 당시에 그가 시문에 상당한 관심을 지니고 있었고 시 창작을 즐겨했음을 알 수 있다.

박준채는 시편 원고 노트의 도입부 목차 란에 작품을 순서대로 기입하고 제목 뒤에 괄호를 새겨넣어 ‘시조’, ‘한시’, ‘하이쿠’ 등으로 장르를 구분해 놓았다.

리명한 회장과 김정훈 교수는 박준채가 시인으로서 문명을 떨치거나 동인회 활동을 한 적은 없지만 그가 그 불씨를 지핀 해부터 와세다유학 시절을 거쳐 귀향의 해에 이르기까지 10여 년 동안 치열하게 시 창작 활동을 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고 귀띔했다.

이들은 “그가 일본 현지에서도 언어와 장르에 구애되지 않고 시 창작 행위에 집념을 보였음은 물론, 독립 쟁취를 위해 가열찬 투쟁을 호소하는 저항시를 작성한 것으로 드러났다”며 “10여 년간 40편의 시를 집필한 문필가로서의 박준채의 존재가 알려지고 그의 시편의 공개를 계기로 그의 작품이 널리 소개되는 등 모든 이들에게 민족정신 함양에 보탬이 되고, 올바른 역사의식을 심어주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입을 모았다.

한편 공개된 시 4편 중 ‘회상’은 1929년 쓰여진 시이고, ‘암투’ 등 3편은 일제강점기 와세다대학 재학시절 쓴 시다. 나머지 미공개 시 17편은 추후 공개할 계획이다.
※발굴 확인된 시편

△원본이 온전하게 발굴된 시편

=‘回想’, ‘瞻星臺’, ‘짝 잃은 양’, ‘嗚呼 兄님’, ‘無想’(時調), ‘님’(時調), ‘亂想’(時調), ‘가을 밤’(時調), ‘잊이 못할 오날 밤’, ‘송발서시’(漢詩), ‘孤愁’(時調), ‘大荒江’(暗鬪), ‘荒城의 羅州’, ‘그리운 진달래’, ‘님이여’, ‘가을비’(時調). ‘一九三七年의 除夕’, ‘黃鳥’(時調), ‘寸感’, ‘中天에’(時調)

△일본어 시편

=‘장미 꽃’(薔薇の花), ‘大荒江’, ‘無題’(俳句), ‘幻想’, ‘黃昏’, ‘除夜二題’(俳句), ‘幻影’, ‘秋夜想’, ‘無題’(俳句), ‘추억’(思い出), ‘初秋雜題’(俳句)

△훼손된 시편

‘甲戌年を送る’(短歌·갑술년을 보낸다), ‘향추’(俳句), ‘무장야의 밤’, ‘그리운 님이여’, ‘님’(時調), ‘月夜想父’(漢詩), ‘귀녀상을 받고’(貴女像を受けて‘, ’그리운 姸이여‘



※확인 발굴 시편들 원문



回想



三更이 다 되도록 좁은 방에서

乙巳年中 한 일을 回想을 하니

나의 눈엔 눈물이 가득하여요



十一月三日은 잇지 못할 날

더러운 저네들의 卑怯行動은

그 누가 안 웃을 이 있을가보냐



새 삶을 求하는 者 無産者로다

團結과 忍耐는 그들의 武器

힘차게 싸워라 굳새인 同志여



피바다로 굴러가는 無窮의 大地에

平和로운 理想鄕 이룰 그때엔

우리도 그곧서 自由롭게 살자



一九二九, 十二, 三一, 作 (작은 舍廊에서)

[밑줄은 필자]



一九三七年의 除夕



宇宙를 울리는 殷殷한 鐘소리

오날을 마즈막 告함인가

血史의 一九三七年!

弱者의 受難期인

風雲의 一九三七年!

百八의 煩悶을 엇지하려고

어대로 그만 떠나려는가



王冠의 花夢도

野生의 荒鳥들의 亂舞로

드디어 빛나게 하고

오래동안 孤羊처럼

大地를 헤매이든 그들을

野鳥群에게만 맛기고

엇지하려고 그만 떠나려는가



孟虎의 明日이 온대도

이 APORIA는

永遠이 靑史에 못박일 터이니

오-즉 피 끓는 젊은이여!

두 팔을 걷으며

힘찬 그들의 鐵腕으로

弱者를 救할지어다

自由로운 우리들의

理想을 爲하야!

새 삶을 爲하야!



멀니서 들리는 悲鳴의 孤笛소리

찬 달님이 客窓에 빛이는 이 밤

지난날의 어버이의 幻影이

끝업시 그리운 이 情調

그 누가 알가 이 哀想을!

나의 마음의 벗이나

불타는 이 마음 알아줄가

亂史의 一九三七年!이여!

잘 가라 永遠의 나라로



一九三七, 十二, 三十一, 后四時, 사기노미야(鷺宮)에서

[밑줄은 필자]



暗鬪



피 끓는 젊은이여!

굳센 두팔을 걷으며

힘차게 hammer를 억개에 메고

火焰이 사라지기 前

단단한 쇠를 처라

굶지 않거든 몇 번이던지 다시 처라

鋼鐵인들 最後에는 굽이나니

우리의 할 일은 泰山 같으나

哀愁의 눈물 흘릴 그때도 아니며

象牙塔의 탈콤한 幻想도 아니요

오-즉 피바다가 되도록

正義를 위하여

새 삶을 爲하여

굳세게, 억세게 싸움에 있다 (하략)

[밑줄은 필자]



寸感



고요한 異國의 달빛에

어데서인지 애닯은 「멜로디!」

窓틈으로 흘러나온다

砂漠의 「캬라반」 노래처럼

아니! 椰子樹 그늘 밑 土人의 춤처럼

喜樂의 交叉面이

흐터진 都會의 大氣와 함께

요란이도 鼓膜을 울려준다



사랑도 名譽도 黃金도

不合理한 이 娑婆

누구를 믿으며

누구에게 하소연하랴

님자 업는 무리들

오-즉 正義의 旗발 아래

싸울지어다

힘차게! 굳세게!



大地를 가림업이 빗어주는

차디찬 저 달님

불타는 이 心琴

살펴 아시리라

未來에 살야든 그들의 꿈

가신님들에게

幸運의 그날이 있도록

부디 傳하여 주소서!



一九三八, 一二, 一七, 밤, 사기노미야(鷺宮)에서

[밑줄은 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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