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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김남주 시인 ‘30주기’ 삶과 문학정신 새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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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댓글 0건 조회 21회 작성일 24-02-13 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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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가 침몰함에도 시만 쓰는 문인들이 많았던 군부독재 시절, 자신의 안일을 뒤로 한채 역사의 질곡에 맞서 싸운 시인이 후배 세대로부터 조명받고 추앙받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 않을까 싶다. 물론 이분들의 투쟁으로 민주화 시대가 도래했지만 오히려 이분들을 기억하지 못하는 세대가 많아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흐름으로 받아들여지면서도 이들에 대한 삶과 문학정신을 배양하려는 전문단의 노력 부족 또한 부인하기 어려울 것이다. 광주전남 출신 중 민주화 투쟁에 나선 문인들은 많지만 그처럼 확고한 투쟁정신을 가지고 앞으로 나아간 문인은 몇 되지 않는다. 더욱이 갈짓자 정국으로 인해 민주주의가 위협받는 시국이라고들 이야기되는 시대 더욱이 문인을 뛰어넘은 전남 해남 출생 김남주 시인(1946~1994)의 시대 정신은 다시 호출되는 형국이다. 이런 김남주 시인이 올해 30주기를 맞아 추모제와 학술제 등 다양하게 그를 새기는 행사와 프로그램들이 잇따라 열릴 계획이다.

먼저 학술제와 함께 첫 선을 보이는 행사로 그의 30주기(2월13일) 제사다. 그의 추모제를 지칭하는 것이다. 추모제는 김남주기념사업회(회장 김경윤)와 광주전남작가회의 등의 주최로 그의 묘소가 있는 광주시 북구 망월동 민족민주열사묘역(구 묘역)에서 오는 17일 오전 11시 거행된다. 추모제는 별세한 날짜를 중심으로 가능한 토요일을 선택해 열렸던 관례에 따라 13일 대신 17일 거행된다.

사회는 유종 광주전남작가회의 부회장(시인)이 맡아 추모사와 추모시 낭독, 추모공연, 육성 낭송시, 사업보고, 유가족 인사, 헌화 및 분향 등 순으로 진행된다.

이번 추모제는 이재오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이사장을 비롯해 5·18기념재단 원순석 이사장, 문경식 전남진보연대 대표, 정양주 광주전남작가회의 회장 및 전임 회장 등 집행부 및 임원, 그리고 회원들이 참여한 가운데 이뤄진다. 유족으로는 박광숙 여사와 아들인 김토일씨, 동생인 김덕종씨 부부 등도 함께하기로 했으며 지난해 참석했던 강기정 광주시장은 현재 미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추모사는 5·18기념재단 원순석 이사장이 맡고, 추모시는 김호균 시인(5·18민주화운동기록관장)이 창작하고 낭송에 나선다. 이어 추모의 노래는 내벗소리민족예술단이 30주기의 경건한 분위기에 더 힘을 보탠다. 참여자들이 김남주 시인의 생전 육성시를 들으면서 그를 기억하고 그의 삶과 문학정신을 기린다. 그리고 김경윤 회장의 그동안 경과 및 사업보고와 유가족 인사, 참여자들을 중심으로 헌화와 분향에 나선다.

올해 김남주기념사업회는 추모제를 시작으로 다채로운 30주기 행사들을 광주를 포함한 해남 등지에서 순차적으로 펼쳐 나갈 복안이다. 김남주 학술제를 위시로 아카이브전, 추모문화제, 30주기 헌정시집(전국 문인 100명 선정) 발간 등이 예정돼 있다.

여기다 김남주기념사업회는 전남대 인문대학 1호관 내 김남주홀에서 30주기 학술초청 강연을 실행할 방침이다. .

이외에 광주시립미술관 또한 김남주 시인 서거 30주기를 맞는 해인 만큼 그를 위시로 한 오월정신을 조망할 ‘오월 문학과 미술’전 및 ‘오월미술 아카이브’전을 4월5일부터 5월19일까지 갖기로 해 주목된다. 광주비엔날레와 시립미술관 중간 중외공원 비엔날레 기념동산에는 김남주 ‘노래’ 시비가 건립돼 관람객들을 맞고 있다.

김경윤 회장은 김남주 시인 30주기 추모제에 앞서 기성세대들에게는 그를 각인시켜야 하는 동시에 자라나는 세대들에게 김남주 시인을 알려야 하는 상황을 맞고 있다. 그에 앞서 이 시대의 상황이 다시 김남주를 부르고 있다고 생각한다. 전체적으로 사회가 반민주적으로 역행하고 있어 이를 기점으로 반민주를 걷어내고 민주주의를 외치면서 남북 문제를 상기하는 등 김남주 정신을 되살리는 기회가 되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김남주 시인은 전남대 영문과에 입학했으나 1973년에 반공법 위반으로 구속돼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는 후 8개월 만에 출소했지만, 이 사건으로 제적당했다. 출소 후 낙향해 농업에 종사하던 중 1974년 ‘창작과 비평’ 여름호에 ‘진혼가’ 등 7편의 시를 발표, 문단에 데뷔했다. 1979년 ‘남민전 사건’으로 체포돼 징역 15년을 선고받고 광주교도소에 수감된 이후 1988년 12월 형집행정지로 풀려나 9년 3개월 만에 석방됐다. 첫 시집 ‘진혼가’는 그가 감옥 안에서 우유팩에 날카롭게 간 칫솔대로 눌러 써서 감옥 밖으로 몰래 내보낸 것들이 실린 작품집으로 의미를 더했다.

시집 ‘나의 칼 나의 피’과 ‘사상의 거처’ 등 다수의 작품집을 남겼으며, 1990년 민족문학작가회의 민족문학연구소장이 됐으나 1992년 건강이 악화돼 사퇴한 뒤 췌장암으로 투병하다 1994년 2월13일 별세했다. 현재 광주 망월동 5·18 묘역에 안장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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