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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1980년대 청년…광주 정신'의 상징인물 조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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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댓글 0건 조회 61회 작성일 23-06-02 1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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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항쟁 이전에는 학생운동을 이끄는 데 사력을 다했고, 5·18항쟁 이후에는 민중운동을 주도하는 청년지도자로 활동해 민중운동사에 뚜렷한 족적을 남긴 신영일 열사를 조명하는 평전이 출간됐다.

문익환 목사와 김남주 시인 등 굵직한 민주인사들의 평전을 기술해온 시인이자 소설가, 평론가로 활동 중인 김형수 관장(신동엽문학관)이 가장 ‘광주답게’ 일생을 살다 갔다는 평가를 받은 청년 신영일을 기록한 ‘신영일 평전’(걷는사람 刊)을 펴냈다.

‘광주의 불씨 하나가 6월 항쟁으로 타오르다’라는 부제를 달고 있는 이 평전은 신영일의 궤적을 기록한다. 신영일 열사는 1980년대의 ‘청년 정신’과 ‘광주 정신’을 상징하는 이름이다.

특히 저자는 청년 신영일의 5·18에 대해 1978년 박기순의 시간에서 1980년 박관현의 시간을 거쳐 공동체의 존엄을 지킨 윤상원의 시간을 겪은 뒤 그의 의 6월 항쟁을 맞는 것으로 대장정을 마친다는 시각이다.

저자는 통기타와 포크송을 좋아하며 ‘세상에 대한 호기심’(전용호 소설가)으로 가득했던 한 청년이 광주 민주화운동에 헌신하기까지의 일대기를 낱낱이 복원한다. ‘높이 나는 새가 멀리 본다’(리처드 바크 ‘갈매기의 꿈’)라는 구절을 늘 품에 지녔던 신영일은 전남대 국사교육과에 진학한 뒤 사회과학 서클 ‘독서잔디’에서 활발히 활동하며 학생운동의 방향과 지향을 찾는 일에 몰두하는 과정을 들여다 본다.

이후 박정희 정권의 ‘국민교육헌장’에 맞서 ‘우리의 교육지표’를 발표하며 학생운동을 주도하고, 박기순 열사가 광주공단에 창립한 노동야학 ‘들불야학’을 함께 지도하면서 민주화 투쟁에 헌신한다는 점을 부각한다.

이 평전에는 투옥과 석방을 반복하면서 한국 민중운동을 6월 항쟁으로 개척하는 그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그가 참여한 노동자 실태조사와 ‘반제·반파쇼 민족해방 투쟁 선언’은 1980년대 운동의 나침반이 되는 한편, 1982년 광주교도소에서 박관현과 전개한 40일간의 단식 투쟁은 5월 학살을 겪고 폐허가 된 광주를 다시 민주화의 성지로 되돌리는 반환점 역할을 한다. 이후 회복기에 건설한 ‘전청련’(전남 민주주의 청년연합)은 광주의 야전사령부가 돼 신민당 개헌 현판식을 국민항쟁으로 승화시키며 5·3 투쟁과 6월 항쟁을 이끌어낸다.

그러나 대선 패배 후 신영일은 낮에는 직장에서, 밤에는 조직에서 미래의 운동을 설계하다 31세의 나이에 과로로 운명을 다하며 세상을 따나고 만다. 이런 열사의 삶에 고개를 조아린 광주의 청년들은 그를 5·18 묘지에 안장하고, 현재까지 추모하는 모임을 이어오면서 그의 삶과 정신을 매년 기리고 있다.

이 평전은 프롤로그를 시작으로 1부 ‘살아 있는 것은 저 푸른 생명의 나무이다’, 2부 ‘검은 태양’, 제3부 ‘박기순의 시간’, 4부 ‘박관현의 시간’, 제5부 ‘윤상원의 시간’, 6부 ‘살아남은 자들의 세계’, 7부 ‘신영일의 시간’, 8부 ‘저 먼 별들의 곁으로’, 에필로그 등으로 구성됐으며 신영일 연보가 더해졌다.

저자인 김형수 관장은 “그들은 세월이 흐를수록 목격자들의 기억에서 한사코 멀어지고 멀어져서 세계의 중심이 된다. 세상이 그가 확보한 도덕과 윤리를 지평으로 내놓는 까닭”이라며, “내가 광주 청년들의 위대한 물결로 그리고 싶었던 신영일의 시간을 함께 만들어 간 그의 선배들, 친구들, 또 후배들의 젊은 날에 경의를 표한다”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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