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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화광동진’ 실천한 삶의 여정…‘오방의 정신’ 되새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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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댓글 0건 조회 110회 작성일 22-07-15 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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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을 사랑하고 동포를 사랑하고/자신을 사랑할지니,/사랑! 사랑! 사랑할지라.’(최흥종의 한시 ‘애적전융성-사랑의 융통성’ 중)

전통과 현대가 공존하는 양림동은 광주지역 핫플레이스 중 하나다. 한옥의 고풍스러움이 가득한 최승효 가옥과 이장우 고택을 비롯해 서양식 건축물인 우일선선교사 사택과 오웬기념각 등이 들어서 있다. 맛집과 카페도 즐비하다. 이처럼 지역민들이 애정하고 관광객들의 필수코스인 양림동은 과거 선교사들이 양림동에 정착, 지역민들이 서양 근대문물을 접할 수 있게 되면서 문화예술인들이 영감을 받고 교류할 수 있는 거점이 됐다. 이같은 분위기는 문학과 음악, 미술 등 여러 예술활동이 확장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고 지금까지 진행되고 있다.

선교사들이 다방면에 영향을 미친 셈이다. 광주 최초 목사이면서 나환자 치료에 헌신한 오방 최흥종 선생(1880~1966)이 광주에서 최초로 예배를 드렸다고 알려진 유진벨 선교사의 사택에서 열린 예배에 참석해 정체성을 고민하다 신앙생활을 시작했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오방 선생은 나환자들을 돌보며 일제강점기 조선노동공제회 광주지회장, 신간회 광주지회장 등을 역임한 독립운동가이자 사회운동가로 이름을 떨쳤다. 신앙생활을 시작하던 때, 그는 앞으로 나환자들에 헌신하며 독립운동가로서의 삶을 살게 될 것을 알았을까.

이런 그를 조명하는 기념관이 양림동에 마련돼있다. 오방최흥종기념관은 오방 선생의 헌신적인 삶을 기리고 광주의 정신을 계승·발전시키기 위해 남구가 근대역사문화마을 조성사업으로 지었다. 지상 1층 432㎡ 규모로 2016년 7월부터 2019년 9월까지 3년여 간에 걸쳐 18억원의 비용이 투입됐다.

오방 선생의 삶을 들여다보러 광주 남구 양림동 소재 오방최흥종기념관을 가는 길. 양림동을 조명한 여러 콘셉트의 투어를 통해 곳곳을 둘러봐 왔지만, 웬일인지 오방최흥종기념관은 처음 가보는 것이어서 설렘을 안고 갔다. 기독간호대 앞을 지나 호남신학대 방면으로 가는 제중로에 들어서 한참을 걸었다. 선교기념비와 광주시립사직도서관, 광주콘텐츠창업보육센터를 지나자 붉은 끼가 도는, 밝은 벽돌로 지어진 낮은 건물이 보였다. 오방최흥종기념관이다. 길가와 맞닿아 있는 건물 측면에는 현수막들이 세로로 길게 걸려 있었다. 샌드아트로 찾아가는 역사교실 ‘오방학교’와 도슨트 양성 프로그램 ‘오방도슨트’ 등 프로그램이 많은 모양이다.

내부로 들어서자 햇빛 사이로 두루마기를 입고 선 오방 선생 청동상이 맞아줬다. 중정에 마련된 그의 청동상이 오방 선생의 기념관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안내데스크를 지나 전시실을 둘러봤다. 새벽의 빛, 여정의 시작, 신행일치의 길, 영원한 자유인 섹션으로 나눠 오방 선생의 삶을 조명하고 있었다.

오방 선생은 불로동에서 태어났다. 방황하던 시절 그는 싸움꾼으로 불렸다고 한다. 유진벨선교사의 예배에 참석한 뒤 종교를 접하게 되면서 고민 끝에 목사의 길에 들어선다. 이후 평양신학교에서 신학을 공부, 목회 활동에 매달렸다. 그러던 중 윌슨 포사이드 선교사가 거리낌 없이 나환자를 도와주는 것을 보면서 큰 감명을 받는다. 당시 우리나라에는 2만여 명의 나환자가 있었고 전라도와 경상도에서 주로 발병했다고 한다. 이에 땅을 기증해 광주 나병원을 설립, 나환자 뿐만 아니라 결핵환자들, 빈민들을 돌봤다.

일제의 경양방죽 매립에 반대하는 운동을 전개, 3·1운동 때는 김철과 같이 전남 총책으로 만세운동을 주도, 이후 3년 동안 옥고를 치렀다.

광주 제중병원에서 근무한 이력도 갖고 있다. 전남대 의대의 전신인 광주의학전문학교 설립에 기여, 인재 양성에 앞장섰다.

문안교회에서 광주 첫 장로를 시작으로 북문밖교회를 설립, 이후 금정교회와 제주도 모슬포교회 목사였다. 또 시베리아에서 두 차례에 걸쳐 선교 활동을 전개했다. 광주중앙교회를 창립한 장본인으로, 광주 YMCA를 창설한 이후에는 3·5·8·10대 등 회장도 역임, 광주 신간회에서는 좌우익 모든 정파로부터 초대회장으로 추대됐다.
광복 이후 건국 운동에 참여한 그는 한국 나환자근절협회를 창설, 1966년 5월14일 세상을 떠날 때까지 사람들을 돕는 일에 열중했다.

정부는 오방에 1962년 애국 훈장, 1986년 대통령 표창,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 전시장에서는 이들과 신사참배에 굴복한 총회의 결정에 맞서 교역자들의 반성과 평신도들의 각성을 촉구한 호소문, 오방 선생의 유품 등을 볼 수 있었다.

특히 기억에 남는 것은 백범 김구 선생이 써줬다는 ‘화광동진’(和光同塵)이라는 휘호였다. 백범 선생이 삼남지방순회 일정 중 광주를 두 번 방문했는데 그때마다 오방 선생과 만났다고 한다. 그때 써준 제 이 휘호다. 화광동진의 의미는 빛을 부드럽게 해 속세의 티끌과 같이한다는 것이다. 오방이 세속을 벗어나 타인에 헌신하면서 영원한 자유를 누렸음을 나타내는 것으로 이해됐다.

그가 사용했다는 한글·영어·러시아·라틴어 성경도 볼 수 있었다. 한글성경에 밑줄이 그어진 ‘성품을 다하야 주 네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오 둘째는 그와 같으니 이웃 사랑하기를 네 몸과 같이 하라 하셨으니’ 부분을 한참동안 들여다보기도 했다. 성경의 말씀대로 삶을 실천했다 여겨져 뭉클함이 느껴졌다.

전시를 다 보고 나오니 오방 선생에 관한 서적을 읽어볼 수 있는 휴게 공간이 마련돼 있었다. 전시장을 빠져나와서는 건물 우측에 마련된 계단을 발견했다. 계단을 타고 올라가니 탁 트인 공간이 나왔다. 잔디가 깔려 있는 옥상정원이었다. 사직동 광주공원과 이어지는 숲과 어우러져 자연 친화적으로 다가왔다. 거기서 좀 더 걸어가면 마주하고 있는 유진벨기념관과 양림미술관에 다다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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